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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명과 서구문명

G 우왕 0 533


 몇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기하학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수학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과학은? 
르네상스 미술에 비견될만한 중국의 미술은? 

정답은 '없음'일 것이다.(구장산술이니 주비산경이니 해서 고대 중국의 수학이 우수했음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으나, 모두가 하나같이 증명과정이 결여되어 있기에 오늘날 그 수학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철학의 전통이 사라졌던 중세 암흑기를 제외하고 동양이 서양보다 우월했던 적이 있을까? 중국이 발명했다는 것들도 사실상 '발견'이거나 '기술'일뿐, 과학이 아닌 것들이다. 


애초에 동아시아 문명에 과학은 없었다. 기술만 있었을 뿐.

동아시아인들은 실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서양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하거나 앞선 '발견'을 하기도 했지만 이를 크게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원리를 모르니 발전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인의 사고는 그것이 얼마나 현실에 쓸모있는가에 집중되어 있었을뿐 그것이 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비과학적 사고로 인해 동아시아 문명은 정체되었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곧 철학이다.

이 철학은 컴퓨터로 따지면 OS, 즉 운영체제다. 운영체제에 따라 컴퓨터의 활용이 달라지듯이 동양철학은 서양철학에 비해 저열하기 때문에 동양은 서양을 이길 수가 없다.

서양은 도덕과 진실, 즉 감성과 이성을 구별하여 철학이 발전해왔다. 감성은 신에 대한 원죄를 통해 끝없는 도덕적 반성을 요구하는 기독교, 이성은 지식 그 자체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검증을 강조하는 그리스 철학. 이렇게 쌍두마차가 균형적으로 발전하면서 서양은 도덕성과 과학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동양은 감성과 이성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덕성에 어긋나는 진실은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간주해버리는 오류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철학은 대부분 전국시대 중국의 제자백가사상들이다. 대표적으로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병가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지금도 동아시아인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다..


1. 유가 - 합리주의적 사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때의 합리주의는 유교적 합리주의로서 도덕율에 합치하는 이성만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하여 불쾌한 진실은 받아들이지 않는 비논리적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유교합리주의는 생활의 경험 즉 자기가 실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그대로에 합치하느냐만 따지는 것으로 논리성, 과학성, 근원성과는 거리가 먼 합리다.

가령 유교합리주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우리가 이렇게 서 있는 땅은 평평하고 또 기울어지지도 않았는데 어찌 둥글단 말인가. 우리의 일상 경험에 비추어볼 때 말이 안 되는 비합리인 것이다. 또 지구의 자전설도 지극히 비합리적인 주장이다. 지구가 돌면 우리가 어찌 거기에 발 붙이고 살겠는가?

이처럼 유교의 합리기준은 현실의 경험에 있었다. 다시 말해 너무나 현실성, 실용성에만 치우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유교합리주의에 빠진 대다수의 동아시아인들은 실생활에 쓸모없는 지식이나 기술은 틀린 것으로, 쓰잘데 없는 것으로 여기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요즘도 서양에서 뭔가 이상한 연구를 했다는 소식이 나오면 도대체 저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냐며 폄하하기 바쁘다.

대신 유교적 합리주의에 따라 실용성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를 개발의 동기로 삼는 기술에 있어서는 서양을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기술의 근간이 되는 과학이라는 근원적 영역에서는 너무나 취약하여 패배하고 있다.

이처럼 유교는 그 실용적인 성격으로 인해 속물적인 욕구마저 합리화시키는 실수를 범했다. 그래서 학문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진리 그 자체를 중히 여겨 이를 탐구한 고대 그리스 철학과는 달리 유교에서의 학문의 목적은 성인이 되어 입신양명하여 효도하는 것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학교 공부에 대한 자세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다.

2. 묵가, 명가 - 묵가는 기독교적 윤리관에 가까운 학파다. 그리고 묵가와 명가는 동아시아 철학으로서는 논리학적 특징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 학파로 유가의 유교 합리주의와는 다르게 지식 그 자체를 중시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둘은 매우 서양에 가까운 학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도덕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여 도덕에 어긋나는 지식은 거짓으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해 결국 형식논리학으로의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3. 법가 - 인간의 인성 같은 걸 배제하고 법치에 의해 시스템만으로 사회를 돌리려 했던 체제다.(물론 꼭 성향을 들자면 성악설에 가깝기는 하나, 애초에 인성이 어떻든 그것의 변수로서의 성격을 무시하고 시스템 자체로 결과를 고정시키는 걸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철학이라기 보다는 정치학이나 행정학에 가까운 학파로 덕분에 동아시아의 정치체제는 서양과 비교했을 때 중앙집권이나 관료제적 측면에서 대등한 수준을 보여준다.(반면 민주정이나 공화정과 같은 체제는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러나 지식에 대한 태도는 진리 그 자체의 탐구가 아닌 경세제민의 수단일 뿐이었다. 이 점에서 한계.

4. 도가 - 어떤 논쟁이나 탐구도 때려치고 집착하지 말고 살라는 사상. 비슷한 것으로 원효의 화쟁사상이 있겠다. 의문이나 탐구심이 생기면 논쟁을 하게 되고 거기에 집착하게 되어 괴로우니 그냥 집착 자체를 하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는 것.

끝없는 검증과 연구를 거듭하는 과학과는 상극관계에 있는 사상으로서 돈 많은 갑부들이 시골에 쳐박혀 남은 여생을 살 때나 좋은 사상이다.

5. 병가 - 손자병법으로 대표되는 학파. 기본적으로 승리하는 인생, 승리하는 국가를 목표로 한다. 인생과 역사를 전략적으로 접근하기에 좋은 사상.

대표적으로 일본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크게 발전시키고 국민사상에 내재화한 대표적인 예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명언을 바탕으로 제2차대전까지 일본의 승승장구는 병법가에 의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법가와 마찬가지로 지식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으므로써 근본적인 한계를 내포한 사상이었다. 기술을 아무리 발전시켜도 과학력이 뒤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한계에 봉착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래서 일본은 지금도 서양이 과학을 통해 지식을 발표하면 이를 토대로 기술을 개발하여 창의력이 없는 모방의 동물이라는 악평을 듣기도 한다. 이건 한중일 삼국이 마찬가지.


요즘도 한중일 삼국의 언론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동아시아 학생은 1위를 하는데 왜 노벨상은 제대로 못 타나?"
"동아시아 교육은 지식의 암기뿐 원리나 근본 원인은 가르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모두 철학이라는 OS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유교합리주의와 유교의 학문관이 다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유교합리주의적 사고에선 가장 합리적인 것이고, 출세하여 입신양명하고 효도하는 것이 유교의 학문관에선 가장 이상적인 태도인 것이다. 그러니 서양처럼 시험에 안 나오는 것에 빠져 공부를 하거나 원리 위주로 공부할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러니 중국이 엄청나게 발전하여 기술로 서양을 이겨서 돈을 더 많이 벌지는 몰라도 과학이라는 이 세상 만물의 근본지식에 대한 우위는 절대로 확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세상을 바꿀 과학지식이 발견되고 발표되면 이를 부랴부랴 수입해서 응용, 돈 벌어먹는 수준에 그칠 것이란 말이다.

즉 돈은 더 많을지 몰라도, 서양의 문명적 우위는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

1인당 소득 따위가 문명의 척도라면 중동의 산유국들은 세계 최첨단의 문명을 누리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컴퓨터 CPU 성능이 좋고 VGA 성능이 좋아도 운영체제가 도스면 그 컴퓨터의 활용도는 제한될 수밖에 없듯이, 동아시아의 운영체제인 제자백가의 사상이 고대 그리스철학에 비해 그 성능이 너무나 떨어지는 이상 동아시아인은 절대로 서양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럼 "이 OS를 그냥 교체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OS는 물건이나 학문 수입하듯이 쉽게 들여와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그 사회의 문화와 교류, 경험을 통해 자리잡는 것이지 소프트웨어 설치하듯이 포맷하고 새로 깔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예 백인에게 입양되어 그곳에서 자라났다면 모를까.

물론 유교합리주의에서 보이는 속물근성은 어느 문명에서나 보이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동아시아의 경우 그 속물근성을 유교철학으로 아예 합리화, 도덕화를 시켜놨다는 거다. 이런 속물근성이 합리화, 도덕화되어 우리 마음에 정착된 이상 이런 합리적인 운영체제를 바꿀 필요를 느낄 일이 없다는 거다.

이를 입증하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언론에서 주입식 교육을 관두고 원리교육, 토론식교육 같은 걸 하라고 하는데, 그 이유를 보면 지식 그 자체의 깨달음과 이를 통한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노벨상 같은 걸 타서 국위선양해야 된다는 걸 들고 있다. 유교적합리주의내에서의 과학적 사고방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전통적인 유교합리주의와 마찬가지로 학문과 지식을 수단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유교합리주의내에서의 과학적 사고의 수용이다.

이러니 안 된다는 거다.

우리 동아시아인은 여전히 현실에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하는 것에만 생각이 집중되어 있기에 서양인의 사고방식에 진정으로 매력을 느낄 일은 절대로 없을테니까 말이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방식의 수준은 이 둘의 외모만큼이나 한쪽은 입체적인데 비해 한쪽은 평면적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서세동점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게시물은 M운영자님에 의해 2017-12-14 17:42:32 과학/역사/ETC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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